“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태복음 16장 3절)
과학의 발전으로 현대인은 과거보다 훨씬 똑똑해져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요즘 아이들은 재능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사회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른들보다 젊은이들을 전적으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전이 선악의 행위와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문명 수준이 상승하는 데 반하여, 악행의 수량은 늘어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 것은, 소위 식자층 인사들의 영적 무지를 노출한 행위입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인 가운데 율법과 儀式 行爲에 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들은 사회과학에 정통한 이들로서 질서와 규범을 강조하는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사두개파라는 명칭은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사제직을 가지고 산헤드린 공회를 주도했던 정치적 종교집단의 세력입니다. 사두개인은 부활, 영생, 천사, 영혼 등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현재의 종교, 정치, 사회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도층 인사들과도 같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공부를 많이 했고 똑똑한 인재들이며 일반사회와 교계에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예수께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요구는 표적을 보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습니다. 믿지 않기에 표적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불순한 의도로 묻는 것은 문제해결의 정당한 자세와 방법이 아닙니다. 信義 없이 빈정거림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불순한 의도로 질문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마음의 진실 여부를 어찌 모르실까요.
예수님은 그들의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셨습니다. 어른들보다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는 젊은이는 어리석게도 어른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어른의 교훈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의 어떤 점을 어쩌다 물어보면, 귀찮은 듯이 부모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두 번 다시 묻기가 거북하여 차라리 체념하고 그냥 불편을 감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젊은이나 자식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도와드리는 것이 예수를 믿음의 도리입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내일 날씨가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이 궂을 것입니다. 이것은 기상의 상태를 말한 것으로, 자연과학의 합리적인 사실을 보여줍니다. 요즘에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모르거나 확실치 않은 게 생기면 손에 든 스마트폰을 통해 즉시 답을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도서관에 가서 많은 시간 동안 힘들게 찾아야 겨우 알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간단히 아주 쉽게 알아냅니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이상징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게 그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악한 세대’라는 예수님의 지적이 먼저 중요합니다. ‘너희’가 소위 표적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표적을 구했다면 괜찮을 테지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세속적인 의도로 어떤 허무한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으니, 그들은 어리석고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이름으로 뭔가 세속적인 것을 얻으려 기대합니다. 심지어 성직의 지위를 통해 돈을 벌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실 것은 요나의 표적뿐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냈던 것처럼,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마12:40). 부활은 죄를 대속하고 새 생명을 주는 기적적 변화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표적으로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믿음 하나만 있으면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나의 표적을 보면서 날씨도 분별하도록 합시다.
(2020년 9월 27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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