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나훔 3장 4절)
나훔 선지자는 BC 7세기 후반 앗수르 나라의 멸망 직전에 본 예언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나훔서에서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독립한 앗수르는 기원전 612년에 멸망하기까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에 걸친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신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기까지 앗수르는 근동지역의 최초 통일제국으로서 패권을 유지했습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전도로 유명한 곳으로 티그리스강 동편 모술 강 건너편에 위치합니다.
고대국가에서 1400년 동안 역사를 유지했다면 다양한 문화의 발전도 이룩했을 것입니다. 초기, 중기, 신 아시리아의 시기를 거치면서 영토가 확장되었고, 처음에 무역 중심의 도시국가인 왕국으로부터 차츰 군사 국가의 제국으로 나아갔습니다. 중기 후반에는 쇠퇴의 길에 들어서기도 했으나 신 아시리아 시대인 10세기 이후로는 영토의 정복과 전술 및 농업의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앗수르는 강력한 기병과 전차 군대, 조직화한 관료, 완비된 역전(驛傳) 제도에 의해 체계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억압적 통치, 과도한 세금 징수로 반발과 내분으로 혼란한 가운데 갈대아와 메디아의 공격을 받아 BC 612년에 니느웨의 함락과 더불어 멸망하였습니다.
나훔 선지자의 기록 시기는 앗수르의 멸망 직전이었으므로 종교 정치 경제 문화 군사(軍事)의 모든 면에서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훔은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 나훔의 표현에서 당시의 정치와 군사적인 상황이 대단히 혼란스러웠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군사적 용어로 혼란과 압정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했습니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그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싸움과 피로 점철되어왔습니다. 개인 간의 싸움이나 국가의 사이에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그래왔듯이 현재도 미래에도 그러한 싸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정계에서 계속되는 싸움을 보노라면 정말로 힘듦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기가 싫어서 이 땅을 떠나 살 수는 없을까, 순간순간 고민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다가도 마음을 추스르고 “사람 사는 게 어딘들 다르겠는가?” 생각하여 다시금 힘을 냅니다. 아담 때도 예수님 때도 그랬는데 지금인들 어찌 안 그럴까?
니느웨 성이 그랬듯이 이 시대가 그러한 이유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하여 여러 나라와 족속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진실이 아닌 방법으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이 마술입니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마술에 정신없이 빠져들곤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미약합니다. 좋은 것은 지독히 싫어하면서 나쁜 것은 왜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원죄에 물든 영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함을 아무래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음녀를 좋아하되 더욱이나 미모의 음녀를 물리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 음녀가 누구입니까? 사람의 영혼을 앗아가려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사탄은 나라와 백성과 온 세계를 온갖 방법으로 끈질기게 미혹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를 멸망시키듯이 개인 영혼과 국가정치 경제와 보건, 가릴 것 없이 세상을 공격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헤쳐나갈 방도는 무엇일까? 방역, 건강, 경제, 정치, 군사, 기술 등, 모든 사업을 더욱 발전시켜야겠습니다. 온 국민이 각자 열심히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꼭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음녀의 치마를 걷어 올려 온 나라와 민족에게 부끄러움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복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실 것입니다.
(2020년 10월 18일,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한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것이 헛되도다 (0) | 2020.11.01 |
---|---|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0) | 2020.10.25 |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 (0) | 2020.10.11 |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0) | 2020.09.27 |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0) | 2020.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