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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쿠노Koonoh 2023. 4. 23. 14:11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베드로전서 219)

 

사환들은 주인으로부터 억울하게 손해 보기 쉬운 을()의 처지입니다. 민주화가 보편화한 현대사회에서는 사측(社側)과 노동자 사이의 권리관계가 대체로 원만합니다. 오히려 사측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노동자의 세력이 커져 있습니다. 고대 노동자의 권리는 거의 노예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현시대의 주종관계는 베드로 당시와 외형상 달라져 있지만, 성경은 시대에 상관없이 원칙적인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인생에 언제나 다가오는 것이므로, 상수(常數)처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타당하게 대처함으로써, 고난을 온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성질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인들 가운데도, 선하고 관용하는 이들이 있거니와 또한 까다로운 자들도 있습니다. 본문에, 주인이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을 똑같이 대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당한 어려움을 당할 경우입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말로는 쉽지만, 실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자꾸 괴롭히는데, 그저 허허 참기만 한다면, 그는 바보 아니면 성인(聖人)일 것입니다. 고난을 참으라고 하는 말은, 바보가 되라는 게 아니고 성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성인이 되려면 교훈의 습득과 수련 과정을 통해서 도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의지함 없는 도인은 완전한 경지의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매를 맞는다면, 그것은 억울한 일도 아니고 또한 칭찬받을 일도 아닙니다. 잘못의 대가를 마땅히 치르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도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억울한 일입니다. 교도소 수감자들의 얘기인즉,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감옥에 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황입니다. 심판 때에, 정죄를 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무죄를 내세운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선을 행한 자들은, 자신들이 선을 행한 일이 없다고 하나같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의인은 선을 행했으면서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선악의 부류가 구분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당연한 정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차원을 초월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려면 일반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돌려대라고 하셨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청입니다. 그렇지만 이성의 정서적 범위를 넘어서도록 부름을 받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말씀을 실행하려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지 배워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생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가르침의 말만으로 인생이 변화하기는 불가합니다. 사람의 심성이 웬만한 방법으로 감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으로써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죽음은 가장 완전한 희생의 사랑입니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인생 모두의 죄 문제로 목숨을 버렸으니, 완전한 사랑의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예수를 알고 나면 감동하고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도 고통이 있었으며 자연 이성(理性)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욕을 당했을 때 맞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받았을 때 상대방을 향하여 위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 계심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기에 슬픔과 고통을 느꼈으므로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으나, 인간 구원의 임무를 이행하고자,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길의 고난을 감수(甘受)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렇도록 힘든 고난을 받으신 목적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자기의 죄를 없이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로 거룩한 새 생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길을 모르던 옛날에는 길 잃은 양처럼 지향 없이 방황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생의 목자이신 예수를 감독으로 삼고 따라가는 안정된 인생입니다.

 

(2023423, 예수제자원 예수제자교회 Koonoh쿠노 오호택 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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